5060, 나를 다시 반짝이게 한 작은 취미 — 원석 주얼리 만들기

 

비 내리는 날, 갱년기를 지나며 찾은 작은 반짝임

밴쿠버에는 비가 참 자주 온다.

평소에는 익숙한 비인데도 유난히 마음이 가라앉는 날이 있다. 창밖은 온통 회색이고,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괜히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그런 날.

나에게는 갱년기를 지나던 시간이 딱 그랬다.

별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 푹 가라앉기도 하고,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칠 작은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비 오는 날, 문득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를 조금 더 반짝이게 해줄 무언가가 없을까?'

그렇게 시작하게 된 것이 주얼리 만들기였다.

작은 반짝임을 하나씩 골라보는 재미

처음부터 대단한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색을 골라보고, 작은 원석과 유리구슬을 늘어놓고, 이 색 옆에는 어떤 색이 어울릴까 맞춰보는 일이 재미있었다. 귀걸이 하나를 만들고, 목걸이 하나를 만들어보면서 조금씩 내 취향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원석을 하나씩 만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작은 돌 하나가 정말 그저 돌덩이일까?'

지금 내 손바닥 위에 놓인 것은 손톱보다도 작은 원석 하나지만, 이 작은 돌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내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 땅속에서 여러 성분이 모이고, 열과 압력을 견디며 응집되어 지금의 색과 무늬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바라보니 원석 하나하나가 그냥 예쁜 돌로만 보이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품고 내게까지 온 작은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비슷하게 생긴 원석들도 자세히 보면 하나하나 다르다. 색도 조금씩 다르고, 무늬도 다르고, 빛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표정도 다르다. 그래서 원석을 고르는 시간이 나는 참 좋다.

오랫동안 땅속에 숨어 있던 작은 돌을 골라 다른 원석과 연결하고, 거기에 내 생각과 취향을 조금 보태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준다.

어쩌면 주얼리를 만든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일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에 나의 작은 이야기를 하나 더 이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손끝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

주얼리를 만들 때는 생각보다 손이 바쁘다.

작은 구슬을 집고, 순서를 바꾸고, 다시 풀고, 연결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만들어 놓은 것을 다시 풀기도 한다.

그런데 그 시간이 좋다.

작은 것 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조금 전까지 머릿속을 돌아다니던 이런저런 생각들이 잠시 멈춘다. 색을 고르고, 모양을 맞추고, 작은 부품 하나를 연결하는 동안에는 그저 지금 내 손끝에 있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완성하고 나서 목에 걸어보거나 귀에 달아보면 작은 것이지만 기분이 달라진다.

누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아니까.

오늘의 나에게 작은 반짝임 하나를 선물했다는 것을.

나를 위해 시작했다가 다른 사람까지 반짝이게 된 일

처음에는 온전히 나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하나둘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이 색은 그 사람에게 잘 어울리겠다.'

'이 귀걸이는 그분이 하면 참 예쁘겠다.'

그러면서 지인들에게 하나씩 만들어 선물하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주얼리를 누군가가 직접 착용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내가 하고 다닐 때와는 또 다른 기쁨이었다.

그때 알게 된 것 같다.

반짝임이라는 게 꼭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은 아니구나.

나를 조금 반짝이게 해보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 어느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까지 함께 반짝이게 해주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만나는 작은 전시회

주얼리를 만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재료를 찾아 인터넷을 돌아다니게 된다. 그러다 자주 들여다보게 된 곳 중 하나가 Etsy다.

처음에는 원석이나 유리구슬, 작은 부품을 찾으려고 들어갔는데 어느 순간 재료보다 사람들의 작품을 구경하는 시간이 더 길어질 때도 있었다.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자신의 손으로 만든 물건들을 올려놓는데, 보고 있으면 놀랄 때가 참 많다.

'같은 원석을 가지고도 이렇게 만들 수 있구나.'

'작은 유리 조각 하나가 이렇게 멋진 작품이 될 수도 있구나.'

내가 그저 재료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누군가의 상상력과 손끝을 만나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는 것을 보면서 창작의 세계가 참 넓다는 생각을 한다.

때로는 아무것도 사지 않고 한참 구경만 하기도 한다. 그런 날은 꼭 박물관이나 작은 전시회를 한 바퀴 돌아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꼭 어디론가 특별한 전시를 보러 가지 않아도, 내 방에 앉아 세계 곳곳의 손재주 좋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작품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마음이 즐거워질 때가 있다.

그리고 또 새로운 아이디어 하나를 얻는다.

'다음에는 나도 이런 색을 한번 써볼까?'

그것도 나에게는 참 다정한 힐링이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엮어가는 선물

요즘은 주얼리를 만들기 전에 먼저 그걸 받을 사람을 생각할 때가 많다.

  • 생일을 맞은 지인에게 줄 것이라면 그 사람의 평소 옷차림과 좋아하는 색을 생각한다.

  • 칠순을 맞은 분께 드리는 선물이라면 조금 더 우아하고 품위 있게 만들어보고 싶어진다.

  • 크루즈 여행을 떠나는 분을 위한 것이라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여행지의 햇빛 아래에서, 조금 멋지게 차려입은 저녁에 할 수 있도록 평소보다 조금 더 화려하게, 조금 더 반짝이게 만들어본다.

그 사람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원석 하나하나를 고른다. 큰 비용이 드는 선물은 아니다. 하지만 만드는 동안 계속 한 사람만을 생각한다.

어떤 색이 어울릴까.

어떤 옷에 하고 다닐까.

이걸 받고 기분이 좋아질까.

생각해보면, 그 사람을 생각하며 보낸 그 시간 자체가 이미 선물의 일부인지도 모르겠다.

비 오는 날, 이번에는 누구를 반짝이게 해볼까

갱년기를 지나며 마음이 조금 가라앉아 있던 어느 비 오는 날.

나는 그저 나를 조금 더 반짝이게 해줄 무언가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한 작은 취미가 내 손끝을 바쁘게 해주었고, 마음을 다른 곳에 집중하게 해주었고,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색과 재료와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뜻밖의 선물을 하나 더 주었다.

나만 반짝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함께 반짝이게 할 수 있다는 것.

창밖에 비가 내리고 조금 마음이 가라앉는 날이면, 나는 작은 원석들을 꺼내놓는다.

아주 오랜 시간을 품고 내게까지 온 작은 돌들.

그중 하나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누구를 반짝이게 해볼까."